누수·곰팡이 수리비, 원칙은 임대인 부담인데 예외는 언제일까?

2026-10-22 · 법률 · 읽는데 8분

누수·곰팡이 수리비, 원칙은 임대인 부담인데 예외는 언제일까?

월세든 전세든 살고 있는 집에서 물이 새거나 곰팡이가 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 내가 고쳐야 하나, 집주인이 고쳐야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누수와 곰팡이 수리비는 원칙적으로 임대인 부담입니다. 민법 제623조가 임대인에게 임대차 기간 내내 집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지우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입자가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파손이거나 세입자의 관리 소홀이 원인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누수는 원칙적으로 집주인이 고칩니다

대법원은 94다34692 판결에서 기준을 명확히 했습니다. 파손이나 장해가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고칠 정도로 사소하면 임대인에게 수선 의무가 없지만, 고치지 않으면 계약에서 정한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을 정도라면 임대인이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벽지가 젖고 곰팡이가 옷장 뒤까지 번진 상황이라면 후자에 해당합니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가 2024년 10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1~8월 하자분쟁 접수는 3,119건, 처리는 3,52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0%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하자로 인정된 유형에서 결로가 8.4%, 누수가 7.8%로 나란히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공동주택 분양 하자를 다룬 통계이긴 하지만, 젖은 벽을 두고 결로냐 누수냐가 쟁점이 되는 사건이 그만큼 흔하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원인 다툼입니다. 집주인이 "환기를 안 해서 생긴 결로"라고 맞서면 세입자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이때 출발점은 원인 확정이 아니라 통지입니다.

집주인이 고쳐야 하는 것과 세입자가 고쳐야 하는 것

경계를 가르는 핵심은 '사소한 파손인가, 구조적 하자인가'입니다. 참고 자료에서 확인되는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주인이 고쳐야 하는 것과 세입자가 고쳐야 하는 것
집주인이 고쳐야 하는 것과 세입자가 고쳐야 하는 것
항목 부담 주체
노후 보일러 고장, 배관 문제 임대인
천재지변 파손, 수도관 동파 임대인
화장실 수전·변기 고장 임대인
옵션 냉장고·에어컨 노후 임대인
형광등·샤워기 헤드 교체 임차인
1~2년 된 건물의 곰팡이 임차인

표에서 보듯 형광등 교체나 샤워기 헤드 교체처럼 소모품을 갈아 끼우는 수준은 집주인 책임이 아닙니다. 계약서에 특약이 따로 없다면 세입자 몫입니다. 반면 보일러, 배관, 수전, 변기처럼 주거에 필수적인 기본 설비는 임대인이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영역으로 봅니다.

곰팡이는 판단이 갈립니다. 1~2년밖에 안 된 건물에서 곰팡이가 폈다면 통상 세입자가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은 과실로 봅니다. 단, 곰팡이가 건물 자체의 구조적 하자로 생긴 것이라면 예외입니다. 이 경우 도배 수리비는 세입자 부담이 됩니다.

"수리는 세입자가 한다"는 특약, 어디까지 유효할까

계약서에 "시설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는 한 줄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조항이 모든 수리를 세입자에게 넘기는 것은 아닙니다. 94다34692 판결은 수선 의무를 특약으로 임차인에게 넘길 수는 있지만, 범위를 명시하지 않았다면 임차인 부담은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 수선 등 소규모 수선에 한정된다고 봤습니다.

대파손 수리, 건물 주요 구성부분 대수선, 기본적 설비 부분 교체 같은 대규모 수선은 특약이 있어도 여전히 임대인 몫입니다. 방수·배관 공사까지 "세입자가 한다"는 한 줄로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누수 발견했을 때 순서대로 할 일

원인을 몰라도 통지 의무는 생깁니다. 민법 제634조는 임차물 수리를 요하는 때 임차인이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통지 없이 먼저 시공해버리면 나중에 비용을 청구할 때 금액과 필요성을 다투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누수 발견했을 때 순서대로 할 일
누수 발견했을 때 순서대로 할 일
  1. 젖은 부위와 곰팡이 번진 범위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날짜가 드러나게 찍는 편이 좋습니다.
  2. 집주인에게 수리 요청과 함께 원인 조사 요청을 문자나 카톡 등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보냅니다.
  3. 응급 조치가 필요했다면 조치 전후 사진과 수리 견적서를 함께 보관합니다.
  4. 집주인이 과실을 주장하며 버티면 현장 조사 결과와 견적서로 사소한 파손인지 구조적 하자인지 보여줍니다.

비용을 먼저 냈다면 청구할 수 있는 근거

세입자가 어쩔 수 없이 먼저 수리비를 냈다면 민법 제626조 제1항에 따라 임대인에게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임차물 보존에 관한 필요비를 지출한 경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방수·배관 수리는 통상 이 필요비 쪽에 해당합니다.

같은 조 제2항의 유익비는 임대차가 끝날 때 가액 증가가 남아 있는 범위에서만 청구할 수 있어 성격이 다릅니다. 청구 전에 남겨둘 자료는 수리 전후 사진, 견적서와 영수증, 집주인과 주고받은 통지 기록 세 가지입니다.

월세에서 빼면 안 되는 이유

집 일부를 쓸 수 없게 되면 민법 제627조 제1항에 따라 그 부분 비율만큼 차임 감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법에 근거가 있는 권리입니다. 다만 감액 폭을 세입자가 스스로 정해 월세를 덜 내는 방식은 위험합니다.

필요비 상환채권과 차임채무를 상계하려면 금액과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주인이 연체로 보고 해지·명도 절차로 대응할 여지가 남습니다. 감액은 협의로 정하거나 조정 절차를 거치는 편이 안전합니다.

집주인이 계속 거부할 때 쓸 수 있는 절차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호는 "임차주택 유지·수선 의무에 관한 분쟁"을 조정 대상으로 명시합니다. 제23조 제1항은 신청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조정을 마치도록 하고, 부득이하면 의결을 거쳐 30일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게 합니다.

과거에는 임대인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신청이 각하되는 맹점이 있었습니다. 2020년 법 개정으로 지금은 임대인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됩니다. 조정에는 수수료가 들지만, 시행령 제33조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면제될 수 있습니다.

조정안을 임대인이 끝내 수락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으로 넘어갑니다. 소액사건심판규칙 제1조의2는 소송목적의 값 3,000만원을 넘지 않는 금전 지급 청구를 소액사건으로 정하고 있어, 수리비 규모에 따라 이 절차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누수로 방 하나를 아예 쓸 수 없다면 민법 제627조 제2항에 따라 남은 부분으로 임차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검토 대상이 됩니다. 다만 감액 청구로 조정할 수준인지, 해지까지 가야 하는 수준인지는 상황에 따라 판단이 갈립니다.

Q. 원인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제가 부담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원인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세입자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다. 민법 제623조가 임대인에게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 유지 의무를 지우고 있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파손이 아니라면 수리 요구는 임대인을 향합니다. 원인 조사 요청과 통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실무상 출발점입니다.

Q. 집주인에게 알리기 전에 먼저 고쳐도 되나요?

권하지 않습니다. 민법 제634조가 수리를 요하는 때 지체 없이 통지하도록 정하고 있어, 통지 없이 시공하면 필요비 상환청구 단계에서 금액과 필요성을 다투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응급 조치를 했다면 사진과 견적서를 반드시 함께 남겨야 합니다.

Q. 집주인이 분쟁조정 참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과거에는 임대인이 거부하면 신청이 각하됐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자동개시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세입자가 신청하면 임대인 참여 의사와 무관하게 조정절차가 시작됩니다. 다만 최종 조정안을 임대인이 수락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Q. 월세를 스스로 깎아서 내도 되나요?

위험합니다. 차임 감액청구 자체는 법에 근거가 있지만, 감액 폭을 세입자가 임의로 정해 덜 내는 방식은 연체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금액과 근거를 명확히 한 뒤 협의하거나 조정 절차를 거치는 편이 안전합니다.